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 게바라 (문단 편집) === 유년기 ===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(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). [[산타페#s-2.3|산타페]] 주 [[로사리오#s-2|로사리오]]의 귀족가 혈통을 이어받은 [[부르주아]] 집안 출신으로 아버지는 제법 큰 [[병원]] 원장이었으며 따라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잘 자랐다.[* 그런데 동생은 가난하진 않았지만 부자도 아니었다고 묘사한다. 특히 학창시절이 아주 가난하게 표현된다.] 하지만 부모가 둘 다 중립적 자유주의자라 어릴적부터 [[스페인 내전]] 패배로 망명한 [[스페인 제2공화국|공화국]] 정부 인물들과 만나 진보적인 사고에 대한 지각을 넓혔다. 클수록 가정에 헌신적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커졌다고 한다. [[파일:attachment/체 게바라/76.jpg|width=300]] ^^유년시절의 체 게바라^^ 체 게바라 평전에 의하면 어린 시절 에밀리오 살가리(1862~1911)[*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으나 이탈리아 및 [[스페인어]]권, [[포르투갈어]]권 지역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탈리아의 [[쥘 베른]]이라는 호칭까지 듣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모험 소설가.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[[말레이시아]]를 배경으로 한 산도칸 시리즈와 앤틸러스제도 [[해적]] 시리즈가 가장 유명하다. 19세기 [[제국주의]] 시대답지 않게 앤틸러스제도 해적 시리즈를 제외한 대다수 소설의 주인공은 비백인종이고 [[백인]]은 악당이거나 취급이 좋아도 주인공의 조력자 정도였다. 비단 체 게바라뿐만 아니라 [[아옌데]], [[푸치니]], [[움베르토 에코]] 등이 그의 애독자였고 특히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소설에서 여러 번 살가리를 언급했다. 살가리의 소설은 그의 생전에 이미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비평가들에게는 혹평받았고, 거기에 가난까지 겹치면서 살가리는 191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.]의 소설들에 빠져 살았는데 이 소설들에서 반제국주의적 사고관을 배우게 되었다고 적혀있다. 사색과 독서를 좋아했다고 한다. 체 게바라는 미숙아로 태어났다. 두 살이었을 때는 아버지의 팔에 안긴 채 차가운 여울을 건너다 천식에 걸려 평생 흡입기를 가지고 다녔다. 그럼에도 학창시절 럭비를 즐겨 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었고, 시가를 즐겨 피웠다.[* 천식 환자이면서도 시가를 피우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, 시가는 궐련과 달리 기본적으로 연기를 목(기관지)으로 삼키지 않고 입에 머금어 향을 즐기고 내뱉기 때문이다. 특히 정글에서 야영할 때 모기를 쫒는 데 시가 연기가 좋다는 이유로 더욱 즐겨 피우게 되었다고 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